흠뻑 젖은 첫날을 뒤로 하고
일찍 서두른 둘째 날 아침은
심상치 않은 바람과 함께 시작하고 있었다.
길가에 묶어놓은 나무들은 죄다 쓰러져있었고
카메라라도 들면 바람에 몸이 흔들려
어딘가에라도 기대지 않고는 조심스럽게 찍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나는 걷는다
이 길을 따라 걷는 것으로
나의 하루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처럼
걷다가 지치면
잠시 앉아서
바람을 들으키곤
배고프면 어딘가의
작은 마을 구석 만두 한 접시
입에 담고 출발한다
달리 시계 볼 일도 없이
빛과 어둠을 등대삼아
걸어다니곤
어두어져가는 어느 건널목 너머 편의점에서
초코바 두 개 사들고
입에 하나
주머니에 하나
바람이 거세게 분다고
여행길이 부담스럽지도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저 제주도의 풍랑은
풍경의 일부로
이 여행의 기억으로
내 몸 속에 녹아들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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