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族 (3) 썸네일형 리스트형 2007.3 작은아버지 회갑연에서 아마도 내 기억 어디를 뒤져보아도 친가끼리 강릉에서 모였었다는 그런 사실이란 도무지 찾아지질 않는다. 작은집이 30년 이상 강릉에서 사셨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저 작은아버지를 뵙는 일이란 직접 작은아버지께서 대전과 서울을 오가실 때 뵙는 일이 거의 전부이며, 어쩌다가 강릉에 갈지라도 그건 우리가족끼리 잠시 다녀가는 일이 된다. 그러던 중에 작은아버지 회갑연을 위한 친가의 '강릉행'이란 하나의 '사건'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나마도 일년에 몇번 모이려고조차 잘 안하려 하는 친가끼리의 모임은 사실 굉장히 어색한 하나인데, 역시나 모인 친척간의 대화도 면면도 모두 사뭇 딱딱하고 소통의 기록조차 어딘가 끊어져버리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나 스스로조차 소속감을 가지지 못한 채 편협.. 2007.5.8 - 대전에서 가족들의 미국행으로 인해 한동안 쓸 수 없었던 나의 FM2. 그 안에 감겨있던 필름을 현상한 것은 롤을 감은지 한달이 훌쩍 넘어서였다. 그렇게 현상된 필름을 빼어들었을 때 촬상면이 서로 겹쳐서 손실된 필름이 무려 4장이었으며 너무 오랜 시간동안 카메라 안에 묵혀있던 관계로 소비하기 위해 찍은 샷도 상당수였다. 그렇게 묵힌, 스캔하기 위해 밀어넣은 필름 피스를 통해 맨 처음 촬상된 것은 고모가 사촌여동생 대신 돌봐주고 있는 5촌조카.. 이 녀석 여자애답지 않은 얼굴과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는데 비해 울기도 잘하거니와 대신 울음이 굉장히 짧은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찾아뵙는 할아버지의 모습 역시 왠지 굉장히 차분하고 편안해 보이셔서 다행이었다. 역시 몸도 건강해야겠지만 마음이 건강해야한.. 만년 동안의 동거 글쎄... 내게 있어 어머니란 존재는 살붙이라는 말 외에는 어떤 의미로도 解할 수 없다. 그건 마치 살아온 동안 말벗하고 응석받고 도와주고 싸워가는 그 일들의 반복 아래에서 뼈져리게 느끼게 되는 관계의 응집같은 것이다. 덕분에 이 일상은 당연한 것이고 풀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굳이 이해하지도 않으련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상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 *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불펌은 허가하지 않습니다.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