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현상과 인화를 따로 하지 않던 시절에 필름은 딱 한종류였다. 모두들 그랬듯이 말이다..
슬라이드는 전혀 다른 개념의 매체였고(똑딱이에 넣어서도 찍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현상과 인화용이 아니었으며 내가 쓸 물건같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 와서 필름이란 것을 알고 찍을 수 있는 시절에 도착했을 때 필름은 사양산업이었다. 모두가 디카를 사고 있었고 DSLR 을 선망하고 있었다. 그런 시절 위로 얼떨결에 동생의 FM2 를 붙잡고 정착액처럼 미끄러져 도착한 나는, 파인더 안에서 포커스 정조준을 못해 헤메고 있었고 셔속과 조리개에게 적절한 관계를 맺게하는 방법을 몰라 맨날 조리계 완전개방모드로 코끝에만 촛점을 걸어두고 있었으며 필름 착탈 역시 할 줄 몰라 장착된 것만 허비하는 녀석이었다. 덕분에 바닥부터 기어올라와야 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하게도 나는 아는 척 하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사실 스캔 작업을 할 때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는 후작업의 성향이 갈리게 된다. 네거티브는 변형과 가공, 포지티브는 강화 쪽으로 가게 된다. 어느쪽이 좋느냐고 묻는다면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네거티브는 포지티브의 발색을 따라올 수 없다. 그건 이미 결론이 나와있다.
그렇다면 네거티브의 후작업은 무슨 소용일까? 그건 바로 도전이다. 발색이 슬라이드를 못따라온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대신 네거티브의 장점은 다이나믹스가 굉장히 넓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 넓은 다이나믹스가 네거티브에 있어 화이트 밸런스의 무책임함을, natural 과 neutral 사이를 오가는 힘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지티브의 설득력 강한 화발과 배색율은 네거티브를 절망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양날의 검을 늘 갈고 닦아주는 검객의 자세는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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